책으로의 여행/800 : 문학

여행의 이유(김영하) : 무언가로부터의 도피

평범한 과학도 2023. 7. 12. 21:48
 
여행의 이유
여행의 감각을 일깨우는 소설가 김영하의 매혹적인 이야기 『여행의 이유』.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던 저자가 처음 여행을 떠났던 순간부터 최근의 여행까지 자신의 모든 여행의 경험을 담아 써내려간 아홉 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지나온 삶에서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온 저자는 여행이 자신에게 무엇이었는지,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여행의 이유를 찾아가며 그 답을 알아가고자 한다. 2005년, 집필을 위한 중국 체류 계획을 세우고 중국으로 떠났으나 입국을 거부당하고 추방당했던 일화로 시작해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목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추방과 멀미》, 일상과 가족,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피로로부터 도망치듯 떠나는 여행에 관해 다룬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즐겁고 유쾌하게만 보이는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출연하면서 하게 된 독특한 여행에 대한 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등의 이야기를 통해 매순간 여행을 소망하는 여행자의 삶, 여행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
김영하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9.04.17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여행의 감각을 일깨우는 소설가 김영하의 매혹적인 이야기 『여행의 이유』.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던 저자가 처음 여행을 떠났던 순간부터 최근의 여행까지 자신의 모든 여행의 경험을 담아 써내려간 아홉 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지나온 삶에서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온 저자는 여행이 자신에게 무엇이었는지,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여행의 이유를 찾아가며 그 답을 알아가고자 한다.

2005년, 집필을 위한 중국 체류 계획을 세우고 중국으로 떠났으나 입국을 거부당하고 추방당했던 일화로 시작해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목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추방과 멀미》, 일상과 가족,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피로로부터 도망치듯 떠나는 여행에 관해 다룬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즐겁고 유쾌하게만 보이는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출연하면서 하게 된 독특한 여행에 대한 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등의 이야기를 통해 매순간 여행을 소망하는 여행자의 삶, 여행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kyobo 제공, 여행의 이유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3.7.1 - 2023.7.7

이 글은 김영하 여행의 이유를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조용히 벤치에 앉아 음악만 듣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해야할 일은 산더미였다. 일하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쉴 수만은 없었고, 항상 기운이 없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그제야 이게 번아웃이구나 싶었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단번에 외부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니 나의 내면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나, 유명 유튜버처럼 가방 하나 둘러매고 즉석에서 여행을 떠날 여유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름의 대안으로, 여행 가방 대신 노트북과 책 몇 권을 챙겨 남산 아래의 조용한 카페로 향했다.

 

처음 가본 동네였지만 한적한 분위기에 왜인지 익숙한 듯한 기분이었다. 먼저 골목의 운치있는 일식집에서 배를 채웠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음식 솜씨도 무척 훌륭했다. 그러곤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칠 만큼 작고 좁은 건물 2층에 있는 작은 책방 겸 카페에 앉아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돌아보면 그리 오랜 시간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은 충분히 안정되었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제주도 여행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여행 같은 일상, 일상적인 여행을 꿈꾼다고 한다. 일상과 여행 사이의 간극이 크지 않길 바라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지나치게 계획적인 여행을 꺼린다. 영상을 보며 나와는 좀 다르구나, 나는 나름 계획적인데, 그렇다면 내게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등의 의문이 스쳤다. 그 의문을 되새기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나는 여행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았다. 해외여행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냥 일상을 보내다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곤 한다. 이런 내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대표적인 플롯이 '추구의 플롯'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찾아 일생을 걸고 떠나는 플롯 말이다. 이러한 플롯의 결말은 당연히 둘 중 하나다. 원했던 것을 성취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성취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목표는 이루지 못했어도, 대신 사랑이나 우정을 얻었다거나 인격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는 등등의 결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런 것들은 모험을 떠나기 전의 주인공은 알지 못했던, 의도치 않은 결실이다. 이처럼 여행 또한 추구의 플롯을 따른다고 본다면 표면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 그 속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무언가를 충족하고자 여행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그저 예쁜 경치를 보고 싶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지만, 그 밖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여행으로 이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그리고 작가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여행의 큰 매력으로 꼽는다. 예약한 호텔 방문을 여는 순간의 새하얀 이불과 베개,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낯선 거리의 풍경들은 일상의 기억들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여행에서만큼은 일상의 것들은 그곳에 두고 온 채 생각을 비울 수 있다.

 

그제야 내 여행의 이유를 알았다. 매번 같은 공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했다. 어제 갔던 그 카페에서 어제와 같은 커피를 포장해 와서 마시며, 어제 퇴근했던 시간에 오늘도 퇴근했다. 출근길 퇴근길마저도 겹친다. 이런 끝없이 반복되는 지독한 일상에 나도 모르는 사이 꽤 지쳤나 보다. 그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음식을 먹으며 다른 분위기를 접하는 것만으로 그 기분이 나아진 것을 보면 꽤 많이 지쳤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노트북과 책은 챙겨간 것을 보면 그 순간가지도 일을 놓을 수만은 없었나 보다. 그 일을 그만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일 수도 있겠고, 기어코 다 해내고 싶다는 야망일 수도 있겠다. 나도 내 무의식이라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전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은 분명하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보기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22p)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23p)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과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51p)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58p)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61p)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64p /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김명남 옮김, 책세상, 2014, 87쪽)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81p)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109p)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109p)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165p)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180p)

어둠이 빛이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203p)

흔들림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낯선 단단함. (206p)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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