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헤르만 헤세) : 철학과 문학의 경계
- 저자
- 헤르만 헤세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09.01.20
불안한 젊음에 바치는 헤르만 헤세의 영혼의 이야기!
현실에 대결하는 영혼의 발전을 담은 헤르만 헤세의 걸작 『데미안』. 독일 문학의 거장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던 작품으로, 열 살 소년이 스무 살 청년이 되기까지 고독하고 힘든 성장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불안과 좌절에 사로잡힌 청춘의 내면을 다룬 이 작품은 지금까지 수많은 청년세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목사인 부친과 선교사의 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회고적이며 서정성이 강한 신낭만주의적 경향의 작가로 출발했으며,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깊이있고 내면적인 사고를 갖게 돼 증오보다 사랑, 전쟁보다 평화가 더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이 작품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삶의 궁극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낮과 밤, 의식과 무의식,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지성과 관능, 각성과 도취 등 두 가지의 대립적인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싱클레어와 두 세계 중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고 다만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인간의 고뇌, 고독하게 모색하고 지치도록 갈망하는 청춘의 고뇌를 그려보인다.
-kyobo 제공, 데미안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4.03.05 - 2024.03.16
이 글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자아를 고민하는 순간이 있고, 이러한 찰나의 순간들은 겹겹이 쌓여 오랜 기억으로 남는다. 기억 속에만 머무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순간들은 잊을 만하면 새로 찾아오고 나의 기억은 계속해서 업데이트된다. 결국,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자아를 고민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 고민의 답을 내 안에서 찾고자 한다면 말이다.
고민의 답을 바깥에서 찾고자 한다면 그 고민은 그리 길고 어렵지는 않을지 모른다. 세상이 말하는 정답은 (가령 좋은 직업, 좋은 배우자의 조건 같은 것들 말이다.) 단순 명료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회적 흐름에 반기를 들고, 삐딱선을 타려고 하는 이들이 문제인 것이다.
다행히도 꽤 많은 철학자와 문학자들, 한 시대를 풍미한 위인들이 이런 반사회적이고 진취적인 이들을 지지하고 이들에게 조언을 건네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역시 그중 하나다.
철학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이든, 그것으로부터 영감이나 자극을 받아 사유에 빠진다면 그 대상을 철학적이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굳이 제목을 '철학과 문학의 경계'라 정한 까닭은 첫 도입부를 읽으며 소설이 아니라 철학 서적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온갖 사념들에 사로잡히게 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가 처음 다른 세계를 마주한 순간,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완전히 상반된 악의 세계였기에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평생 옳다고 믿어왔던 나름의 철학이 데미안 앞에서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
그렇게 방황하며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욕구를 쫓는 모습.
그러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모습까지.
싱클레어의 이야기는 자아에 관한 탐구 그 자체이다. 그의 이야기와 그 주변 인물들이 건네는 충고가 내게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싱클레어가 부럽기도 했다.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에바 부인까지. 그런 귀인들을 여럿이나 만난 삶은 역시 행운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행운이 오길 바라던 찰나, 나 역시 그 못지않은 행운아임을 깨달았다. 이 책을 쓴 헤르만 헤세, 그리고 우리말로 옮겨주신 전영애 교수님, 그 밖에도 내게 조언을 건네는 많은 철학자가 나의 귀인일 것이다. 나와 싱클레어의 유일한 차이는, 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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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7p)
여기까지 이야기한 이 모든 체험에서는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성함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내 유년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우리들 운명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線)은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을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혀지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 있으며 계속 피흘린다. (26p)
그렇다, 그때 마음속에서 기억 하나가 번쩍 떠올라, 한순간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비참한 이 상황이 시작되었던 저 고약한 저녁, 그때 나는 한순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밝은 세계 그리고 지헤를 문득 꿰뚫어본 듯 경멸했다! 그렇다, 그때 나는 카인이었고, 그의 표적을 달았던 나는 이 표적은 치욕이 아니라고, 이건 표창이라고 함부로 상상했다. 악의와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내가 우리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에,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다고. (43p)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게와 갈등에 빠지는 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하게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66p)
그 당시 나도 이따금씩은 시험을 해보았다. 그와 똑같이 내 의지를 무엇인가에, 내가 그것에 틀림없이 도달하도록 한데 모아보았다. 나에게는 충분히 절싱해 보이는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의지는 모아지질 않았다. 데미안과 그 이야기를 해볼 용기는 못 내었다. 내가 소망하는 것을 그에게 고백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도 묻지 않았다. (79p)
나는 몹시 당황했다. 이 십자가 수난 이야기는 내 자신이 내 집처럼 편안히 확신해도 된다고 믿었었는데 지금 비로소, 얼마나 개성 없이, 얼마나 상상력과 환상 없이 내가 그것들을 듣고 읽었었는지 알았다. 그럼에도 데미안의 새로운 생각은 내게 숙명적으로 들렸고 그 존속을 내가 고수해야 한다고 믿었던 내 안의 개념들을 전복시키려 위협했다. 아니다. 그렇게 아무나, 지고의 성인까지도 마구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다. (82p)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통찰이 갑자기 신성한 그림자처럼 나를 뒤덮었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얼마나 깊이 거대한 사유의 영원한 흐름에 관여되어 있는가를 보고 갑자기 느끼게 되자 두려움과 경외심이 나를 압도했다. 그 통찰은 즐겁지 않았다. 확인해 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도 왠지 즐겁질 않았다. 그 통찰은 가혹했다. 맛이 떫었다. 그 안에는 일말의 책임의식이, 이제는 어린애일 수 없다는, 홀로 서 있다는 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84p)
가을에 알폰스 벡과 만났던 그 공원에서 초봄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소녀가 내 눈에 뜨인 것은 가시나무 울타리가 막 초록이 되기 시작했을 때였다. (105p)
마침내 어느 날 거의 의식 없이 얼굴 하나를 완성했는데, 전에 그린 것들보다 더 강하게 나에게 말을 던져오는 것이었다. (110p)
단 한 가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어 내 앞 어딘가에 그려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장점들을 가질 것인지 정확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려내는 일, 그것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내가 그걸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 해를, 그러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겠지. 어쩌면 나도 하나의 목표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129p)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그리고 우리 몸이 진화의 계보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훨씬 더 멀리까지,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일찍이 인간 영혼들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지.'
'세계를 그냥 자기 속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느냐, 이게 큰 차이지.' (142p)
'그들 하나하나 속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지. 그러나 각자가 그 가능성들을 예감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심지어 그것들을 의식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그 가능성들은 자기 것이 되는 거라네.'
우리의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대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 전적으로 놀라운 것이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모두가, 가장 진부한 대화도, 나직하고 꾸준한 망치질로 내 마음속의 한 점을 계속 두드렸다.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모든 대화가 내 허물을 벗는 일에, 알 껍데기를 부수는 일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화 하나하나에서 짓부수어진 세게의 껍데기를 뚫고 마침내 나의 노란색 새가 머리를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자유롭게 쳐들어, 그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불쑥 내미는 것이었다. (143p)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152p)
때리려 달려들었을 때 나는 방어력 있는 강한 사람을 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맞은 사람은 인고하는 고요한 인간, 말없이 항복하는 무방비한 사람이었다. (170p)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어떻게 한 시간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걸.' (182p)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191p)
우리가 보기에는 어느 종교든지, 어느 구원론이든지 애초부터 죽어 있고 무익했다. 우리가 의무이자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이런 것이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그것이 가져올 어느 것에나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발견할 만큼 우리들 누구든 그토록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그토록 완전히 따르며 기꺼이 살리라는 것. (196p)
그는 사랑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 버린다. (20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