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배운 영화의 매력

아가씨(박찬욱) : 여성주의를 통한 사랑의 본질적 이해

평범한 과학도 2024. 7. 19. 21:32
 
아가씨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조진웅)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김민희). 그녀에게 백작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가 찾아온다. 매일 이모부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외로운 아가씨는 순박해 보이는 하녀에게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녀의 정체는 유명한 여도둑의 딸로, 장물아비 손에서 자란 소매치기 고아 소녀 숙희(김태리).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아가씨를 유혹하여 돈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하녀가 된 것. 드디어 백작이 등장하고, 백작과 숙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는데…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매혹적인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점
6.8 (2016.06.01 개봉)
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김해숙, 박기륭, 문소리, 한하나, 이용녀, 곽은진, 이동휘, 이규정, 김시은, 타카기 리나, 원근희, 조은형, 이윤재, 최종률, 최병모, 한창현, 김인우, 권혁, 임형태, 김리우, 안성봉, 박신혜, 이윤재, 하시연, 김준우

 

 

감상한 날짜: 2024.07.19

이 글은 박찬욱의 아가씨를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찬욱

 

이번 영화는 내겐 박찬욱 감독님의 세 번째 영화다. 작년에 헤어질 결심과 올드보이를 보았고, 올해는 아가씨를 보게 되었다. 고작 영화 세 편만으로 박찬욱 감독님을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이 세 편만으로도 얼마나 치밀하고 매력적인 감독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플롯의 반전을 관객이 결코 함부로 예상할 수 없는, 그래서 영화에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점이 너무나 치명적이다. 이 점은 이미 올드보이에서도 한 번 느꼈지만, 아가씨에서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올드보이에서는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르면서 그 반전이 극에 달했다면, 아가씨에서는 중반부에서부터 반전 요소들이 드러나며 과거를 회상하는 역순행적 구성으로 관객의 몰입을 영화 후반부까지 끌고 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그렇지만 그 반전이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다.

 

 

 

약간의 줄거리

 

분명 백작과 함께 하녀를 속이고 백작에겐 막대한 부를, 아가씨 자신은 자유를 얻기로 약속했었다. 아가씨의 자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하녀를 속여 정신 병원에 입원시켜야만 했다. 그런 하녀가 지극히 순진하다는 사실, 너무나 순진해서 나를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치만 왜 자꾸 그런 그녀가 신경이 쓰이는지, 왜 자꾸만 나를 걱정해 주는 그녀의 모습이 내 눈에 비치는지.

하녀도 마찬가지다. 아가씨를 속이고 돈만 받으면 그만인 것을, 애초에 그러자고 시작한 일인 것을 왜 자꾸 그녀의 편을 들게 되는 건지. 백작이 아가씨와 가까워질수록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지. 사기꾼이 사랑을 하냐며 코웃음 치던 그녀 본인이 결국 아가씨를 사랑하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만, 결코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아가씨는 하녀에게 정말 내가 백작과 결혼하길 바라냐는 물음을 건네고, 그렇다는 하녀의 대답에 그녀의 뺨을 때리고 이모가 죽었던 벚나무에 목을 매러 간다. 그런 아가씨를 하녀가 극적으로 구해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지금껏 숨겨온 각자의 진실을 토로한다.

이후 아가씨는 하녀를 지하실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아가씨가 겪은 일들을 목도하자 하녀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지금껏 늙은이들 앞에서 이런 역겨운 소설을 읽어왔냐면서 소설의 글과 그림들을 칼로 마구 찢고 베고 던지며 내팽개쳐버린다. 이 장면이 내겐 가장 큰 카타르시스였는데, 아가씨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해 준 존재는 결국 하녀뿐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백작 역시 끝에는 아가씨에게 진심으로 결혼을 청하고, 이모부에겐 누가 아내와의 잠자리를 이야기하냐며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백작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을 생각해 보면 백작도 결국은 아가씨가 음서를 낭독할 때 저항 없이 듣고만 있고 방관한, 다른 늙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였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녀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지는 못하는 반쪽짜리 사랑으로는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백작의 고백에 ‘사기꾼이 사랑을 하나요?’라며 하녀가 백작을 보며 했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하는 장면에서는, 하녀와 아가씨가 백작을 보는 시선이 닮다 못해 사실상 같아져 있음을, 하녀와 아가씨의 관계가 그만큼 긴밀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백작은 이모부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수은 담배를 피우며 이모부를 죽이는 동시에 본인 역시 사망하게 된다. 죽음 직전에 여러 기억을 되돌아보는데, 마지막으로 떠올린 장면이 아가씨에 대한 추억, 그중에서도 몰래 하녀와 손을 맞잡던 순간을 떠올리며 필름이 끊긴다.

 

 

 

사랑의 의미

 

유교적 색채가 짙은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에 대한 논의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이 이를 다룬 꽤 수위 높은 영화를 제작했다는 점은 사회적 시선에 사로잡혀 본인의 예술적 세계를 억압하고 싶진 않다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내게 비쳤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가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치 않다. 배우들의 노출 수위가 높다는 사실 역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그러한 자극적이라면 자극적일 수도 있는 요소들보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사랑에 대한 본질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히데코는 나고 자라면서 지속해서 성적인 학대와 조롱, 폭력을 겪어왔다. 심지어는 그 과정에서 이모의 죽음까지 마주하여 감정의 문을 닫아버린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위로와 공감과 사랑을 바래왔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런 감정들을 느껴보지 못한 채, 그 어딘가에도 의지하지 못한 채 외롭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히데코에게 처음으로 진심을 보인 인물이 숙희다.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인물이다. 히데코와 백작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숙희는 점점 더 안절부절못해한다. 몰래 문틈 사이로 엿보고 나무 뒤에 숨어 대화를 엿들으며 그녀의 진심을 확인해 보면 언제나 히데코에 대한 걱정뿐이다. 재산을 노리고 온 하녀 숙희에게는 도저히 그럴 이유가 없기에, 이것이 온전한 사랑임을 히데코 역시 안다.

히데코가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그녀에게 숙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 알 수 있다. 그녀에겐 숙희가 처음으로 ‘내 편’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지하실에 도착하자마자 분노에 가득 차 종이들을 찢어버리는 숙희의 모습은 히데코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숙희는 그녀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 대가 없이 나를 위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존재. 우리는 그런 존재에게 자연스레 사랑에 빠진다. 그 존재가 남성일 수도, 여성일 수도, 반려동물일 수도 심지어는 어떠한 사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존재가 어떠한 형태인지가 사랑의 여부에 본질적인지 모르겠다. 되려 그 형태에 집착하는 일은 사랑을 선명히 이해하는 일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히데코가 늙은이들 앞에서 읽었던 역겨운 소설의 줄거리대로 히데코와 숙희가 사랑을 나누며 끝이 난다. 결국, 그들이 혐오했던 방식대로 그들이 행한다는 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역겨운 소설을 읽는 일의 상처가 그만큼 깊었음을, 그래서 이젠 그로부터 자유로워졌음에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움을 드러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유일하게 찢지 않은 레즈비언 춘화를 떠올리며 그들의 결속된 관계를 증명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시사점 때문인지 내게 아가씨는 올드보이보다 좋은 작품으로 다가왔다. 헤어질 결심은 다음에 다시 한번 봐야 정확한 평가가 될 듯하다. 분명한 건 지금껏 본 영화 중 가장 참신한 로맨스 영화였다. 어찌 되었든 이 영화가 단순한 청불 영화나 동성애 영화로 치부되는 것이 아닌, 사랑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아가씨>

여성주의를 통한 사랑의 본질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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