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 가짜 공감 진짜 공감
-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17.08.07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기 위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 1987년 발표된 후 세계적인 ‘하루키 붐’을 일으키며 저자의 문학적 성과를 널리 알린 현대 일본 문학의 대표작이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인 언어로 새롭게 번역한 이 책은 첫 만남을 추억하는 독자와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독자 모두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전해준다.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울린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와타나베는 자신에게 간절한 부탁을 남긴 여자와 그 부탁을 떠올린다.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기즈키,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언제나 함께였던 와타나베. 그러나 기즈키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행복한 시간은 끝나 버리고 만다. 도쿄의 사립대학에 진학해 고향을 떠나온 와나타베는 나오코와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어느 날, 자신이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는 나오코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kyobo 제공, 노르웨이의 숲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4.07.07 - 2024.07.21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의식에 머물렀을 때는 온전히 내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의식하게 되는 순간부터는 그 정체를 선명히 이해하기 힘든 오묘한 무언가. 내가 바라본 감정의 모습이다. 첫 향을 맡고 향수의 첫인상을 결정했지만, 실은 첫 향이 날아간 뒤의 미들 노트가 향수의 정체성이다. 그제야 이 향을 알았다고 확신할 즈음 베이스 노트를 풍긴 뒤 날아가 버리는 향수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감정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지조차도 단언할 수 없는, 나도 나를 잘 모르는 그런 상태에 빠진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은 실은 충분히 나를 성찰해보지 않았음을 시사할지도 모른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자신을 들여다보기에 꽤 열중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본인의 감정에 확신하지 못하곤 한다. 그의 상황 또한 이 불확실성에 한몫했다. 죽은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고 있는, 그리고 그 연인과 오래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찾아온 새로운 떨림. 누가 직면하더라도 사랑에 확신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와타나베는 치열하게 ‘나’를 고민한다. 감정에 솔직해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와타나베에게 주어진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상조차 하기 싫은, 선택이 아닌 ‘상실’의 상황이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나의 포용력을 넓혀준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일상에서 만났다면 스쳐 지나갔을 법한 인연을, 굳이 이해하려고 용쓰지 않았을 인물을, 소설은 그런 인물에게 감정 이입하게끔 만든다. 소설 속 온갖 묘사와 서술들이 주인공의 입장이 내게 와닿도록 나를 치열하게 자극한다. 공감 없이 글을 읽어내려갔다면 와타나베는 답답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건넬 수 있는 말은 어떻게 두 여인을 사랑할 수 있냐고, 힘들더라도 단호하게 결단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나오코 일은 안타깝게 되었지만 미도리와의 미래를 응원한다는 식의 그저 뻔한 말들뿐이다. 누군가가 공감하는 척 와타나베에게 이러한 말들을 건네는 모습을 혼자 상상해보았다. “상실에 대해 태연할 수 있는 건 타인뿐이지 않을까. 진정 타인에게 공감했다면 누구도 함부로 태연할 수 없지 않을까. 진정한 공감을 우리는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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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감정을 말하면, 미도리라는 사람은 꽤 매력적인 여성인 것 같아요.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편지만 읽어도 잘 알 수 있네요. 동시에 나오코에게도 마음이 끌린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건 죄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넓은 세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거든요. 날씨 좋은 날 노를 저어 호수로 나아가 하늘도 푸르고 호수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고뇌하지 마요. 가만 내버려 두어도 흘러가야 할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야 할 때는 상처를 주게 되는 법이니. 좀 잘난 체를 할게요. 와타나베도 인생의 그런 모습을 이제 슬슬 배울 때가 되었어요. 당신은 때로 인생을 너무 자기 방식에만 맞추려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정신 병원에 들어가는 게 싫다면 마음을 조금 열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겨요. 나처럼 무력하고 불완전한 여자도 때로는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멋진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정말이에요, 이거! 그러니 더 많이 많이 행복해져요.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요. 물론 나는 당신과 나오코가 해피 엔딩을 맞지 못했다는게 애석해요. 그러나 뭐가 옳은지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그 누구의 눈길도 의식하지 말고, 이러면 행복해질 것 같다 싶으면 그 기회를 잡고 행복해져요. 경험적으로 볼 때 그런 기회란 인생에 두 번 아니면 세 번 밖에 없고, 그것을 놓치면 평생 후회하게 돼요. 나는 매일 들어줄 사람도 없이 기타를 쳐요. 무척 재미없는 일이에요. 비 내리는 캄캄한 밤도 싫네요. 언젠가 다시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있는 방에서 포도를 먹으며 기타를 치고 싶어요. 그럼 안녕히.
-6월 17일 이시다 레이코 (52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