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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의 여행/400 : 자연과학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 삶의 흐름

by 평범한 과학도 2023. 9. 3.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창백한 푸른 점’ 속 천문학자가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법

『네이처』가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과학자로 주목한 심채경의 첫 에세이
이론물리학자 김상욱, 『씨네21』 김혜리 기자 강력 추천!

천문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과 세상, 그리고 멀고도 가까운 우주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름다운 무언가에 대해서는 ‘별처럼 빛난다’고 말하고,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면 별자리로 운을 점치며 ‘우주의 기운’이 함께하길 빌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천문학자에게 천문학이란, 달과 별과 우주란 어떤 의미일까. 할리우드 영화 속 과학자들의 ‘액션’은 스릴이 넘치고 미항공우주국과 일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일지는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뉴스들이 오히려 천문학을 딴 세상의 이야기로 치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속 천문학자 심채경이 보여주는 천문학의 세계는 그러한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멀다. 빛과 어둠과 우주의 비밀을 궁금해하는 천문학자도 누구나처럼 골치 아픈 현실의 숙제들을 그날그날 해결해야 한다. 다만 그 비밀을 풀기 위해 ‘과학적으로’ 골몰할 뿐이다. ‘지구는 돌고 시간은 흐른다’는 우주적이고도 일상적인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천문학자의 이야기는 그러하기에 더욱 새롭고 아름답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프롤로그」에서

-kyobo 제공,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3.8.15 - 2023.8.21
이 글은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잠을 설치곤 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을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차라리 내일을 고민했더라면 더 나았을 뻔했다. 손에 닿을 듯 적당히 먼 ‘내일’ 말이다. 안타깝게도 난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냈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하루하루가 모여 다가올 ‘미래’가 두려운 것이었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오는 내일이 아니라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느 미래 말이다.

이런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래에 대한 고민들은 자칫하면 나를 좀먹는다.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은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부정한다. 요 며칠 그런 시간들을 보냈다. 낮이 되면 내 나름 열심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밤에 침대에 누워서는 잘하고 있는 건 맞는지, 엉뚱한데 힘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 속에 잠을 청했다. 그런 하루하루의 반복이었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꽂혀있는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우주가 너무 좋고 꼭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사두고서는 읽지도 않을 우주 관련 책들을 엄마를 졸라서 두세 권씩 사던, 그때 생각이 났다. 다행히 책 내용도 그때의 내 마음가짐과 꽤나 맞닿아 있었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 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56p

내가 꿈꿨던 대학 또한 그런 곳이었다. 마음껏 공부하고 토론하며 지적 성취에 행복해하고 내면의 성장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족보를 구하기에 혈안이 되었었고 학점으로 나를 평가하곤 했었다. 이상과는 멀어진 현실이 부끄러웠다. 시험을 위한 벼락치기보다는 본질을 이해하는 공부를 하자고, 문자와 부호로 매겨지는 평가보다는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과정에 집중하자고 다시금 다짐한다.

어릴 땐 숙제하다 잘 모르면 부모님께 물어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요즘의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부모님은 각자 나름의 인생에서 대가이시지만, 내가 가는 길은 그 방향이 아니다. 지구를 떠난 탐사선처럼, 내가 나의 삶을 향해 가열차게 나아갈수록 부모님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든다. 그렇게 점차 멀어져만 가는 것이다. -154p

물론 부모님의 마음과 다를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돈도 많이 벌고 복지도 좋은,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길을 나 또한 가길 바라시곤 한다. 그렇지만 분명 이해해 주실 것이다.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끝이 두려워 시작조차 안 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고.

나를 더욱 곤란케 하는 것은, 내가 어떤 대단한 계기로 천문학을 선택한 것도,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천문학자가 되기만을 그리다 마침내 꿈을 이룬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각자 인생의 흐름이 있는 것이고, 나는 삶을 따라 흘러 다니며 살아보니 지금 이러고 있다. -145p

어쩌면 내가 두려웠던 미래는 희미한 어둠이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둠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어코 보겠다고 용을 써봐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어두움. 그런 어두움 속이라면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온전히 받아들인 채 한 걸음 한 걸음을 돌다리 두들겨 보고 건너듯 조심스레 내딛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그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가 내 삶의 흐름이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열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계절이 멀어지고 또다시 돌아오는 시간 중 대부분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이 ‘뭐라도’ 되었을 무렵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소모되었다. -2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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