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서은국
- 출판
- 21세기북스
- 출판일
- 2021.06.02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낀다
진화생물학으로 추적하는 인간 행복의 기원
행복이라는 개념에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온 문제적 베스트셀러 『행복의 기원』이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행복의 기원』은 2014년 출간된 이래 11만여 독자의 사랑을 받고 유수 매체에서 조명받은 명실상부 행복 분야 필독서다.
세계적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행복에 관한 통념을 낱낱이 해부한다.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면도날을 든 그의 논증은 거침없고 결론은 명료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개나 공작과 다르지 않은 동물이며,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이자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동물이 ‘왜’ 행복을 경험하는지 알아야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다는 것.
『행복의 기원』 개정판에는 저자가 10년간 글과 강의를 통해 독자들에게 받은 질문을 토대로 작성한 발문과 QnA 장이 추가되었다. 행복은 정말 마음먹기에 달렸을까? 생존과 번식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출생률은 왜 자꾸만 떨어지고 있을까? 일상에서 행복을 많이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의 본질을 파헤치며 기존의 통념을 산산조각 내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뇌 속에 설계된 행복의 ‘차가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kyobo 제공, 행복의 기원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4.7.23 - 2024.7.29
이 글은 서은국 교수님의 행복의 기원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은 지는 반 년하고도 더 된 책이다. 그래서 이미 글을 작성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실수로 임시 저장 목록에서 삭제했었다는 사실을 2024년을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다시 글을 작성하려고 노트와 다이어리를 뒤졌다.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다이어리나 노트에 필사하곤 해서 그 기록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이 책의 구절들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는 것이다. 분명 필기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즈음 노트의 맨 뒷 장에서 우연히 필사를 발견했다. 노트 순서대로 안쓰고 맨 뒷 장에 따로 저장해두고 싶었나보다. 이런 경험 덕분인지 이 책의 감상을 다시금 떠올리는 일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다. 다시 2024년을 정리한다면 이 책을 가장 우선에 둘 정도로 행복했다.
나는 행복에 관해서 일종의 강박이 있던 사람이었다. 보통 행복은 무의식에 존재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지 모르며 그렇게 행복한 순간은 조용히 왔다가 떠나간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의식적으로 잡아두고 싶었다. 지금이 행복하다는 걸 온전히 느끼며 그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내게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는데, 감정과 삶을 주제로 한 교양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감정을 진화적인 관점에서 자주 설명해주셨다. 감정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형성된 수단이라는 내용이었다. 달콤한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열량이 높은 음식에 긍정적인 감정을 부여해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상한 음식에 쓰고 떫은 맛을 느끼며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는 고귀한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특정 생물 종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에 가까울 것이다.
왜인지 허무가 밀려왔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그런 소소한 감정들을 느끼기 위함이라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행복을 뭐라 정의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내겐 소중한 감정이다. 그런 감정들이 실은 내 생존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지금껏 꿈꿔온 이상에 비해 현실은 차갑게 느껴졌다. 그런 괴리 속에서 행복을 더 자세히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 역시 내가 들었던 강의와 비슷한 뉘앙스로 행복을 이야기한다. 행복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도구라는 관점이다. 다만 이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직접 제시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 환희와 절망도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니 (적응하기 마련이니) 거창한 목표보다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복을 자주 경험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물론 낭만적이지만 내겐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그렇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렇게 행복의 빈도를 늘리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행복하면 그 자체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이기에 충분할지 모른다. 과장을 보태면, 세상만사가 다 아름다워 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행복의 기원이 결국 DNA의 생존임을 인식한 지금, 나는 그 행복이 마냥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 책의 문장처럼 행복해지고자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셈이니 말이다. 결국 나의 의문은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과 맞닿는다.
행복이 생존을 위한 도구라는 견해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나의 삶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자격이 있다. 행복이 진화적 수단이라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의미' 역시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는 실은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결국 행복이 무엇이며 나아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미 역시도 남의 의견을 참고할 수야 있겠지만 결국은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남에겐 의미가 없더라도 내게 의미 있다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의미를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아마 죽기 직전까지도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하는 존재가 인간일지 모른다. 단지 분명한 점은 나는 의미를 고민함으로써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이다. 파도에 휩쓸리기보다는 물을 가르며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보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그리고 있을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 인간은 DNA의 번식을 위한 존재라는 관점에 흥미를 느끼셨다면 책 '이기적 유전자'를 추천해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소유냐 존재냐'도 읽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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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모르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멍청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많은 선택과 결정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의식은 아주 한정된 용량의 값비싼 자원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23p)
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해보자.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모습도 아니고, 그 역할이 생각만큼 절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의식만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생각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항상 좌우한다고 착각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보다 중요한 원인을 못 보게 만들기 때문에. (27p)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특히 '모든'이란 단어에 주목하자. (55p)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71p)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76p)
내가 다른 사람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객관적 미모)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과 관련이 없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주관적 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114p)
많은 사람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라 루시프코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그래서 항상 '오버'를 한다. 이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저것을 놓치면 너무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117-118p)
적응이란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다. (중략) 그래서 '쾌락의 쳇바퀴 hedonic treadmil' 라는 표현이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쓰여왔다. 적응 때문에, 그 무엇을 얻어도 행복은 결국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 뜻이다. (122p)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123p)
지금 나는 왜 이 모양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를 떠올린다. 부모를 잘 만나서, 혹은 잘못 만나서, 대학 전공 때문에, 기타 등등. 조금씩은 모두 관련이 있겠지만 무엇을 하며 어떤 인생을 사느냐를 결정하는데 상당히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성격이다. (132p)
문화에 대한 여러 학문적 정의가 있지만, 핵심적인 개념은 '공유된 이해 shared understanding' 다. 생각, 가치, 규범이나 행동 방식에 대한 문화 구성원 간의 암묵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고 자연스러운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가 서로 구축된다. (156p)
우리 문화의 이런 획일적인 사고는 개인의 자유감을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행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문화적 분위기가 심리적 자유감을 무조건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얼마나 신경을 쓰며 사느냐다. (중략) 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에 대한 타인의 반응이 더 중요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삶을 경험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살게 된다. (166-167p)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169p)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192p)
마지막 문단은 제가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인상적이라 느끼지 못했지만, 추후 글을 작성하며 접해보니 이 책의 본질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추가하였습니다. 아래의 블로그도 살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https://blog.naver.com/yooert227/222025899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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