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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배운 영화의 매력

소울(피트 닥터) : 여전히 타오르는 불꽃을 지닌, 혹은 시들해진 불꽃에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by 평범한 과학도 2024. 9. 23.
 
소울
나는 어떻게 ‘나’로 태어나게 되었을까? 지구에 오기 전 영혼들이 머무는 ‘태어나기 전 세상’이 있다면?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게 된 그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탄생 전 영혼들이 멘토와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면 지구 통행증을 발급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조’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시니컬한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멘토되길 포기한 영혼 ‘22’꿈의 무대에 서려면 ‘22’의 지구 통행증이 필요한 ‘조’그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을까?
평점
8.8 (2021.01.20 개봉)
감독
피트 닥터, 켐프 파워스
출연
제이미 폭스, 티나 페이, 그레이엄 노튼, 레이첼 하우스, 앨리스 브라가, 리처드 아이오와디, 필리샤 라샤드, 도넬 로울링스, 퀘스트러브, 안젤라 바셋, 코라 샴포미어, 마고 홀, 데이비드 디그스, 웨스 스투디, 포춘 페임스터, 제노비아 샤로프, 준 스큅, 페기 플러드, 지니 티라도, 캐시 카바디니, 로니 델 카르멘, 에스터 채, 마커스 셸비, 피오트르 마이클, 에이버리 와델, 사키나 제프리, 칼럼 그랜트, 오추와 오기, 제이슨 페이스, 존 라젠버거

 

감상한 날짜: 2024.09.17

이 글은 피트 닥터의 소울을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질문들의 해답을 영화, 넓게는 예술에서 찾고자 했던 경우가 지금껏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현재의 고민거리와 가장 가까이 닮아있는 영화나 책을 접했다. 그러면서 그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감독이나 작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들에게서 조언을 구하려 했다. 그렇게 줄거리를 상세히 읽어보고, 영화 평론가의 추천도 받아보며 작품을 신중히 골랐지만, 그럴 때마다 왜인지 모르게 나와의 간극을 좁힐 순 없었다. 비슷한 듯해도 언제나 그 본질은 미묘하게 달랐고, 그렇게 허구와 나 사이의 차이를 느꼈다. 하지만 오늘 본 이 영화는, 짧은 소개 글조차 읽지 않고 우연히 본 영화의 내용이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그리고 그 영화가 제시하는 나름의 답이 나의 발자취와 꽤 비슷하다는 점이 영화를 보는 내내 전율과 감동에 차오르도록 했다.

 

삶이 한순간의 성취들만으로 지속될 수 없음을 실은 너무나 잘 알지만, 그것을 앎에도 뚜렷한 삶의 목적을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으며, 어째서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그럴듯한 명쾌한 이유 없이 이것을 지속해도 괜찮을지 걱정되는 순간 말이다. 그런 순간마다 주인공 조 가드너처럼 나의 불꽃 역시 활활 타오르기를, 매 순간 머릿속에 재즈밖에 없길 바랐다. 내 불꽃은 음악이 분명하다고, 이대로 죽기는 너무나 아쉽다고, 다시금 내가 살고자 했던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소리치는 확고함을 나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것저것 많이 접하다 보니 더는 나의 불꽃이 전처럼 하나의 것에만 활활 타오르진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내가 아쉽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간절하게 타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내가 좋다고 믿었던 것들을 도리어 의심하게 되었다. 너 정말 그거 좋아하는 거 맞냐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죽고 나서도 여전히 삶의 한 장면을 갈망하는 조 가드너는 꿈꾸는 이의 아름다움을, 수천 년째 불꽃을 찾지 못한 22는 거창한 꿈을 찾는 일은 무척 어려우며 어쩌면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런 22도 막상 지구의 삶을 겪어보니 생각이 변했다. 갈팡질팡하던 코니가 꿈을 확신하게 한 트롬본 연주, 의자에 앉은 사람은 누구든 멋있게 가꿔주는 이 일이 행복하다는 이발사 데즈, 지하철에서 기차를 치며 노래하는 낯선 이. 그렇게 22는 바람을 느끼며 떨어지는 꽃잎을 움켜쥐곤 고백한다. 지금껏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불안했지만, 이젠 삶의 의미나 목적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겠다고, 찾을 수 있겠다고 말한다. 분명 내게도 불꽃이 있을 거라며 하늘 보기나 걷기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22의 말에 조 가드너는 대답한다.

 

‘그런 건 사는 목적이 아니야. 그건 그냥 사는 거지.’

 

모순적이게도 그렇게 지구로 돌아간 22는 지구통행권을 얻는다. 뭔진 모르겠지만 불꽃을 찾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위의 대사는 재즈가 꿈이라며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밴드에서 공연하는 게 삶의 유일한 목적임을 확신하는 가드너의 가치관을 선명히 투영한다. 그렇기에 사는 목적과 그냥 사는 것을 힘주어 구분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냥 사는 일련의 행위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그냥 사는 게 사는 목적이 될 수 있음을 22의 지구통행권이 시사한다. 가드너 역시도 또다시 지구에 도착한 후에야 22의 지구통행권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평생을 꿈꿔왔던 도로테아 윌리엄스와의 무대는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무대를 마친 뒤, 오늘의 이 무대는 내일 다시 한번 더 겪게 될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실은 앞으로 연주할 수없이 많은 무대 중 하나였다는 사실에 설명하기 힘든 공허함을 느낀다. 그런 가드너에게 도로테아는 한 물고기 이야기를 해준다.

 

한 물고기 이야기를 들려주지.
그는 늙은 물고기에게 헤엄쳐가서 말했어. "바다를 찾고 있어요."
"바다?" 늙은 물고기가 말했지. "네가 있는 곳이 바다란다."
어린 물고기가 말했네. "여긴 그냥 물이잖아요! 저는 바다를 원한다고요."

 

찾아 헤매던 바다에 다다르고도 바다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익숙한 물들에 가려져 바다임을 모르는 물고기의 모습은 나 역시 혹여나 주변의 것들을 놓치며 살아오진 않았는지 돌아보게끔 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가드너는 집에서 혼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과거를 회상한다. 재즈 그 자체보다는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던 순간, 부모님께 피아노 선율을 들려드리며 함께했던 시간, 22와 함께 지구에서 겪었던 일들에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가드너는 다시 22에게 지구통행권을 건네고, 22뿐 아니라 가드너 역시 소울 카운슬러 제리 덕에 지구로 향한다. 이때 제리가 가드너에게 건넨 앞으로는 발밑을 잘 보고 다니라는 농담이 내게는, 매 사소한 순간조차도 무의식적으로 낭비하지 말라는 듯이 들리기도 했다.

 

영화 속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22와 가드너의 새 삶은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미래가 어떠하든지 그들은 행복할 것이기에 그 구체적인 모습을 표현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영화를 본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각자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복할 것이기에 열린 결말을 채택한 것처럼 느껴졌다.

 

지구에서 불꽃을 찾은 22는 지하철에서 소리치던 남자마저도 무서웠지만 좋았다고 말했다. 22가 수천 년 동안 유세미나에서 온갖 것들을 체험해보아도 불꽃을 찾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 대사는 무척 인상적이다. 맛있는 음식, 가까운 이와의 대화, 바람과 꽃잎 같은 자연, 심지어는 타인과의 약간의 마찰에서도 우리는 살아있음을 그리고 공동체에 소속되어있음을 느낀다. 우린 그런 것들에 행복할 수 있는 존재다.

 

한편으론 이대로는 못 죽는다며 저승길을 어떻게서든 거스르려는 가드너의 모습과 왜 도망을 안 치고 가만히 있냐는 가드너의 말에 그저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수많은 영혼을 보며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운지 자문해보았다. 어떤 일에 푹 빠져서 몰입해있는 영혼과 불안감과 집착에 사로잡혀 괴물이 된 영혼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도 자문해보았다. 이 대목에서 나 역시도 무언가를 간절히 꿈꿨던 순간이 있었나 돌이켜보았다가도, 이런 집착에 너무 사로잡혀 나를 옥죌 필요도 없겠다며 안도했다. 그럼에도 나는 22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가드너가 멋졌다. 나도 평생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나 역시도 가드너처럼 여전히 삶을 즐기고, 언제든 재현하고 싶을 정도로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압박과 여유 사이 균형을 찾는 일이 어렵고 그것이 핵심이겠지만, 그 적절한 균형점에서 나만의 불꽃을 찾길 바란다. 지금껏 ‘불꽃’이라는 영화 속 비유를 사용해왔지만 불꽃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불꽃은 삶의 목적도 의미도 아니다. 그런 단순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딱히 무어라 깔끔히 정의할 순 없어도 영화를 보며 우리 모두 공감한, 형용할 수 없지만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게끔 하는 그 무엇이다.

 

<소울>

여전히 타오르는 불꽃을 지닌, 혹은 시들해진 불꽃에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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