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8.1 (2021.10.06 개봉)
- 감독
- 알폰소 쿠아론
- 출연
-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에드 해리스, 오르토 이그나티우센, 팔두트 샤마, 에이미 워렌
감상한 날짜: 2024.11.29
이 글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를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된다. 경이롭다. -이동진 평론가
평소 이동진 평론가님의 열렬한 팬이라 보지도 않은 영화들의 코멘트를 먼저 접하는 경우가 잦다. 또, 한줄평이나 별점을 먼저 살펴본 뒤 그 영화를 감상할지 말지 결정하곤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한줄평은 오래전부터 접했고 내겐 무척 친숙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뒤에 이 한줄평을 되새기니 그 의미가 색다르고 너무나 공감되는 문장이다.
요즘에는 의자가 움직이고 바람이나 물을 쏘는 4D 영화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는 시청각 자료라 생각한다. 시각과 청각, 이 두 감각을 극한으로 활용한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시청각 자료의 교본으로 여겨질 정도로, 제한된 두 감각만으로 영화 속 세상에 빠져들게 하는 압도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카메라의 시점이 관찰자에서 주인공으로 왔다 갔다 하며 그 현장에 내가 함께 머무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대화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일상적으로 연출하는 듯하다가도, 시점이 특정 인물로 전환된 경우에는 음향의 볼륨을 조절하여 위기감이 내게도 전달되는 듯하다. 평소 영화관이 아닌 장소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고, 4D나 IMAX에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 영화는 집에서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영화관의 분위기에 짓눌려보고픈 영화였다.
그렇게 우주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드는 멋진 연출의 SF 영화. 그래비티는 그뿐이 아니기에 더욱더 귀하다.
"이해해, 여기 얼마나 좋아. 그냥 전원도 꺼버리고, 불도 다 꺼버리고, 그냥 눈을 감고 세상 모두를 잊어버리면 되니까. 당신을 상처 입힐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안전하다고. 계속 가야만 하는 이유가 뭔데? 계속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뭐 있냐고? 당신 애가 죽었어, 그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여전히 모든 건 당신이 지금 뭘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어. 만약 계속해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그냥 가보는 거야. 자리에 앉아서 즐겨, 이 땅에 당신 두 발을 묻고 삶을 살아가는 거야. 이봐, 라이언.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영화의 극적인 연출 덕분에, 라이언이 차분히 지구의 라디오를 들으며 홀로 생을 마감하려는 모습에 큰 반감이 들지 않았다. 여러 동료의 죽음을 직면했고, 우여곡절 끝에 새 우주선을 찾았지만 돌아가기 위한 연료가 부족한 상황. 누구라도 절망하지 않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 순간 죽은 동료의 환영이 건네오는 말을 듣고 라이언은 다시 동기를 찾는다.
그들은 고요하고 정적인 우주의 풍경에 매료되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삶의 의미를 잃은 지금, 우주의 고요는 아름답고 경이롭다기보다는 도리어 세상과 작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부담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삶의 목적이 있지 않겠냐고, 사랑하는 딸을 잃는 것보다 큰 좌절은 없을 거라는 동료의 환영은 우주의 정적과 라이언의 회의를 동시에 깨뜨린다. 나 역시도 나만의 생각들에 확고히 사로잡혔을 때, 그래서 도저히 이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때, 누군가 이 내면의 정적을 깨뜨려주길 바랄 때 이 영화가 떠오를 것 같다.
<그래비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건,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찾아보겠다는 것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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