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9.0 (2016.01.14 개봉)
- 감독
- 호소다 마모루
- 출연
- 나카 리이사, 이시다 타쿠야, 이타쿠라 미츠타카, 하라 사치에, 타니무라 미츠키, 카키우치 아야미, 세키도 유키
감상한 날짜: 2025.01.26
이 글은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흔들렸다. 여진이 길었다. -이동진 평론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기 전까지 가장 최근 보았던 영화는 어바웃 타임이었습니다. 어바웃 타임도 즐겁게 감상했었는데, 이터널 선샤인, 어바웃 타임에 이어 시간을 달리는 소녀까지. 시간을 여행하고픈 강한 욕구가 제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마코토에게 달리는 행위는 무척 특별합니다.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타임루프는 마음먹는 순간 저절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힘차게 달리고 구르며 부딪혀야 이루어집니다. 즉, 그녀는 '시간을 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달려야' 하는 셈입니다. 그런 그녀가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온전히 달리고 싶어서 달렸던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고장이 난 자전거에 탄 코스케와 카호의 사고를 막고자 달리는 상황과 마지막 한 번의 타임루프로 돌아간 과거에서 치아키에게 진심을 전하고자 달리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달리는 행위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간절한 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간을 여행하거나 거스른다는 표현이 아니라 달린다는 표현,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제목은 청춘의 열정과 순수함을 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코토에게 타임루프는 많은 것들을 회피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게으름을 회피하기도 했고 서투름을 회피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타임루프로는 서둘러 일어나 학교에 지각하고, 수학 시험을 망치고, 요리 실습 중 실수를 바로잡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쉽사리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누군가의 진심이었습니다. 마코토는 거의 모든 타임루프를 치아키의 고백을 피하는 데 사용하고 코스케와 카호의 연을 이어주기 위해 사용합니다. 치아키의 마음은 꽤 확고해서 말을 돌리고 상황을 모면하려 해도 웬만해서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소한 만남까지 피해 도망 다니다 관계가 어색해져 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젠 다른 이를 좋아하는 치아키에게 질투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계획대로 코스케와 카호가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불의의 자전거 사고로 그들이 목숨을 잃고, 마코토 본인도 그들을 구하기 위해 수없이 달리고 넘어졌지만, 그 사고를 스스로 막아내진 못했습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마법 같은 일이지만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고 되레 더 꼬이고 꼬여 문제가 얽히기도 합니다. 그토록 치아키의 고백을 피하려고 여러 차례 시간을 되돌렸지만 결국 끝에는 마코토가 치아키를 좋아하게 되는, 결국 그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치아키에게 고백을 듣고 싶어 하는 모습은 역설적이면서도 동시에 낭만적입니다. 어쩌면 그녀에겐 시간을 돌릴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껏 수없이 되돌린 시간 동안 변한 건 그녀뿐이며, 그 시간은 치아키의 진심이 마코토에게 전해지기까지 그리고 마코토 스스로 용기 내 본인의 마음을 열어보기까지 걸린 시간일 것입니다.
Time waits for no one.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아.)
주인공 마코토는 우연히도 시간을 되돌릴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마저도 유한했고, 마음처럼 되지 않기도 했지만 말이죠. 하지만 그런 반면에 우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없습니다. 마코토(그리고 치아키 그리고 이모?)와는 대조적으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과학실 칠판에 적혀있는 Time waits for no one,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문장은 영화를 보고 있는 제게 건네는 문장처럼 다가왔습니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결국 지금의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맡겨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시간을 달리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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