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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의 여행/800 : 문학

단 한 번의 삶(김영하) : 우연한 생

by 평범한 과학도 2025. 8. 3.
단 한 번의 삶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의 신작 산문 -오직 한 번만 쓸 수 있는, 나의 삶에 대하여  김영하가 신작 산문 『단 한 번의 삶』을 출간했다. 60만 명이 넘는 독자의 사랑을 받은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유료 이메일 구독 서비스 ‘영하의 날씨’에 2024년 연재되었던 글을 대폭 수정하고 다듬어 묶었다. ‘영하의 날씨’는 초기 구독자의 초대로만 가입이 가능한 서비스로 화제를 모으며 연재 당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단 한
저자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출판일
2025.04.06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된 삶이라는 사건
예측 불가하고 불공평하고 질서 없는 진짜 인생을 사유하다

“때로 어떤 예감을 받을 때가 있다.
아, 이건 이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로구나.
내겐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의 신작 산문
-오직 한 번만 쓸 수 있는, 나의 삶에 대하여

김영하가 신작 산문 『단 한 번의 삶』을 출간했다. 60만 명이 넘는 독자의 사랑을 받은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유료 이메일 구독 서비스 ‘영하의 날씨’에 2024년 연재되었던 글을 대폭 수정하고 다듬어 묶었다. ‘영하의 날씨’는 초기 구독자의 초대로만 가입이 가능한 서비스로 화제를 모으며 연재 당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단 한 번의 삶』은 작가의 지난 산문들보다 더 사적이고 한층 내밀하다. 김영하는 ‘작가 김영하’에서 벗어나,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가만히 말을 건넨다. 열네 편의 이야기에 담긴 진솔한 가족사와 직접 경험한 인생의 순간을 아우르는 깊은 사유는 우리를 멈춰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모르고 살아가는가. 생각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내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쉬운 위로나 뻔한 조언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담담히 풀어낸 솔직한 경험과 고민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단 한 번의 삶』과 함께, 두고 온 시절에서 발견한 자기 삶의 장면들을 기록해보길 권한다.
“원래 나는 ‘인생 사용법’이라는 호기로운 제목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내가 인생에 대해서 자신 있게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내게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졌다는 것뿐.”

-kyobo 제공, 단 한 번의 삶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5.8.1 - 2025.8.3
이 글은 김영하 작가님의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 봄, 지인을 만나 읽고 싶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김영하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고, 꼭 읽어볼 예정이라 답했다. 그러자 지인이 그 작가님 네가 좋아하는 분 아니냐고 물었고, 비교적 가벼운 질문이었음에도 그리 간단히 답하지 못했다. 지금껏 작가님의 총 네 권의 책을 읽었고 이 책으로 이제 다섯 권째가 되었다. 다른 작가님들에 비해 김영하 작가님의 작품을 가장 자주 접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김영하라는 사람에 대해 그리 잘 안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러한 인상 때문에 좋아한다거나, 존경한다는 식의 형용사를 쉽사리 덧붙일 수는 없었다.
 
그러한 생각에 큰 변함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작가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그를 전보다 이해하게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유년 시절 어떠한 환경에서 성장해왔는지 가늠할 수 있었고, 삶에 대한 여러 가치관을 접할 수 있었다. 더 어린 시절 읽었더라면 그 여진이 지금보다 길었을 것 같다. 다만 이젠 나름 머리가 자라서인지,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공감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며 나와 작가님의 견해를 비교하며 글을 읽어나갔다.
 
나도 한때 삶의 분명한 목적을 찾고자 애썼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누구에게도 반박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동기나 근거로부터 비롯된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리던 꿈에 닿아있는 분들은 그저 살아가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다 보니 된 거라며 너무 두려워 말고 일단 부딪혀보라 조언했다. 신기한 점은 거의 모든 분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지금껏 내 삶을 돌아보니 대단한 동기와 계획이 맞물렸다기보다는, 수많은 우연이 중첩되어 지금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다들 비슷한 점을 느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나도 일단 그냥 한 번 부딪혀보는 중이다.
 
그러다 나도 삶의 어느 지점에선가 되돌아본다면, 내 운명을 선한 운명이라 평할 수 있길, 그 시작과 흐름을 분명히 설명해낼 순 없겠지만 어느새 살아가며 끝을 향해 가고 있길 바란다.
 
※ 글 또한 지식재산권을 가지는 지적 창작물입니다. 배포, 전송 시에는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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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9p)

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20p)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게 된다. (29p)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동료들이 주는 이런 의례마저 없다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31p)

그 시절의 나는, 부모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부모의 지시를 따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32p)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정신이 온전했다면 최후까지 포기하지 못했을 희망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41p)

살아생전 아버지가 바란 것과 내가 바란 것은 언제나 달랐고, 우리는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졌다.
다음은 그 이야기다. (50p)

나는 언제 처음 아버지에게 실망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가 사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힘이 들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언제나 내가 부모를 실망시킬까 두려워하며 자랐지 부모가 나를 실망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56p)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61p)

당신이 기대할 수 있었던 기억의 방식은 그것뿐이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대뜸 '제사도 무덤도 필요 없다'는 식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수동 공격은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내가 추던 기대와 실망의 왈츠는 그때 비로소 끝이 났던 것 같다. (64p)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72p)

몸속엔 분노도 많았다. 말과 몸으로 여기저기서 싸웠다. 지금은 조용히 물러설 때가 많다. 좋게 말하면 성숙했고, 삐딱하게 보자면 노회하고 비겁해졌다. 벌이지 않았어도 될 부끄러운 싸움들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다 웃어넘겼어도 될 일인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모든 싸움은 얄팍한 정의감이 부추겼다. (73p)

전반적으로 나는 이십대의 내가 만났다면 재수없어했을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 왜 그렇게 많이 변했냐고 누가 물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75p)

'테세우스의 배'는 조금씩 변했지만, 법과 권위, 대중의 동의가 그 배가 테세우스의 배임을 인증해주었기에 계속 테세우스의 배로 남을 수 있었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테세우스의 배보다도 더 큰 변화를 겪는다. 이십대의 나는 길에서 마주쳐도 지금의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십대의 나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이 과거의 그 사람과 같은 존재라고 애써 믿으며 살아간다. 변하지 않은 어떤 것들을 애써 찾아내, 사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77p)

우주의 만물이 그러하고, 내가 그러했듯, 그럴듯한 이유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변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리혀 변화보다 더 어려운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니 이 자연스러운 결과에 굳이 '도발적 사건'을 갖다붙여 설명할 필요는 없다. (80p)

일단 나는 내가 '아무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게 문제지만 하여튼 그렇다. (85p)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102p)

한 시간의 요가 세션을 마친 뒤 매트에 편안히 누워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를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희미한 불안이 있다. 이것이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이고, 만일 이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온다면 나는 속절없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고통의 의미를 찾아 견디기보다 몸 가볍게 달아나며 마법 구두를 신은 '그림자를 판 사나이'로 살았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기꺼이 견디고자 할 의미있는 고통은 어떤 것일까? (116p)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 (...) /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122p,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中)

"좋게 말해 방황이고, 인생을 낭비했다. 주변에 많은 사랑을 주지도 못했고, 사회에 딱히 기여한 것도 없다. 너무 많은 죄를 지어 내 고통에 대해선 울 면목도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후회 없는 삶은 없고 덜 후회스러운 삶이 있을 뿐' (123p, 김중식 시인의 말 직접 인용)

작품 속 인물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의 사회에 속하고 싶어한다. 교양은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처럼 보인다. 그런데 입장권은 갖기 어렵다. 잘 태어나야 하고, 그러지 못했다면 오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때론 굴욕도 견뎌야 한다. 교양인들의 사회는 배타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름길을 택한다. 리플리처럼 뛰어난 연기력만 있다면 교양은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다. 그러나 교양인의 사회에는 의외로 익혀야 할 규칙이 많고 그 적용도 섬세함과 유연함을 필요로 한다. 오래 계속하다가는 탄로가 난다. (133p)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하만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는데,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137p)

내가 그랬기 때문에, 나는 작가든 누구든 성공한 뒤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조금씩 자기 과거를 편집하거나 윤색할 거라고 은밀히 믿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다보면 자기 자신이 먼저 믿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과 그 성공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운명처럼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139p)

그 학생들은 '하고 싶음'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의 마음. 나는 누구에게도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몰랐고, 알아도 줄 수 없었다. (141p)

가르쳤던 학생들 중 몇몇은 작가가 되었는데 그중에 내게 가능성 같은 것을 물으러 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묻지 않고 그냥 썼다. 그들은 자기 미래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많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쓰는 게 좋고 작가가 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계속 썼을 테고, 쓰다보니 작가도 되었을 것이다. (142p)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143p)

"잘 모르겠는 판에는 함부로 끼지 마세요." (148p)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그냥 살아남은 자이고, 그 이유와 방법도 어쩌면 자신만 알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를 것이다. (151p)

어릴 적 나는 인생을 선불제로 생각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죽어라 공부만 하며 현재를 '지불'하면 그만큼의 괜찮은 미래가 주어지는 줄 알았다. 밤을 새워 소설을 쓰고 몸을 축내면 그 대가로 편안한 미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편하듯이, 고생과 노력은 초반에, 그 과실은 생의 후반에 따먹는 것이려니 했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후불제인 것 같다. 어린 날이 오히려 '공짜'였고 지금은 계산을 치르는 중이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만 같다. (156p)

상황이 좋을 때,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다. 상황이 나쁠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모든 이야기는 거기에 집중한다. (172p)

그러므로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작심하고 꿈을 꾸겠다는 의미다. 현실이 여기 있지만 나는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잠시 넘어갔다가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다, 라고 결심하는 것이고, 실제로도 독자를 안전하게 제자리로 돌려보내준다. (180p)

이런 결정을 내릴 때마다 주변에서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겁을 주었다. 그 '나중'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는 가끔 '어쩌면 나에게 가능했을지도 모를 어떤 삶'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후회는 아니다. 상실감에 가깝다. 살아보지도 않은 인생을 마치 잃어버린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184p)

"누구나 수천 개의 삶을 살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결국에는 그중 단 한 개의 삶만 살게 된다."
(187p,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말 직접 인용)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전략적 고려보다 우선하고, 살지 않은 삶에 대한 고찰은 그런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찾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188p, 앤드루 H.밀러의 「우연한 생中)

삶을 사유하다보면 문득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토록 소중한 것의 시작 부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작은 모르는데 어느새 내가 거기 들어가 있었고, 어느새 살아가고 있고,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189p)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게 도와준 '선한 운명'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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