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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의 여행/800 : 문학

오역하는 말들(황석희)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

by 평범한 과학도 2026. 4. 2.

읽은 기간: 2026.1.1 - 2026.1.14

이 글은 황석희의 오역하는 말들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들 운명 같은 것을 믿는지 모르겠다. 나는 운명은 믿지 않지만 우연이 지나칠 정도로 거듭된다면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 정도의 우연이라면 운명이라 여겨도 좋을 만큼의 희박한 확률을 이겨낸 것일 테니 말이다. 왜인지 이 책이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연말을 맞아 방을 정리하며 몇몇 책들을 중고서점에 처분하였다. 그렇게 현금으로 중고 책값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용해야겠다고, 헌책을 챙겨 중고서점으로 향하는 도중 마음을 먹었다. 책을 팔고 또 책을 산다니. 무척 생산적인 듯 느껴졌다. 그렇게 손에 현금을 쥔 채 꽤 오랜 시간 서점을 누볐음에도 마음에 드는 책을 찾지 못했다. 평소엔 사고픈 책이 넘쳐서 문제였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막상 책을 사려고 마음먹으니 도통 끌리는 책이 없다. 심지어 다음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얼른 골라야 하는데. 그렇게 전혀 관심 없던, 평소였다면 들르지도 않았을 법한 책장에서 우연히 이 책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이 책이 그날 본 책 중에선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이 책을 대충 일주일 정도 읽으니 얼핏 절반 넘게 읽었다. 하루 이틀이면 남은 분량도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 공항으로 떠나는 가방에 챙겼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만 읽다가 다 읽건 다 읽지 못하건 책을 부모님께 건네주려고 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책을 챙기면 괜히 짐이 되는 것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비행기에 오르기 전 가방에서 책을 빼려는 순간, 이 책이 여기까지 나를 따라온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지금 빼더라도 가방엔 책 한 권 정도의 공간이 빈다. 빈 공간을 두어 무얼 하나, 그럴 거면 그냥 챙기자, 라는 생각이 앞섰다. 이 책이 여기까지 나를 따라온 것도 우연인데, 하필 가방에 책 한 권 정도의 공간이 남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닐까.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며 책을 갖고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2시간 만에 이 책을 다 읽었다.

 

실은 작년 12월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를 봤었다. 영화 속 도저히 잊히지 않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대강의 뉘앙스뿐 아니라 정확한 대사를 기억해두고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영문으로 된 대사는 발견했지만, 우리 말로 된 대사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 영문을 해석해내려 나름 용을 썼는데 도저히 영화를 보며 내가 느꼈던 분위기와 감정, 그때의 뉘앙스가 되살아나는 번역은 못 하겠더라.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한 번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무척 예쁜 대사들이 많아서인지 엔딩 크레딧에서 황석희라는 이름은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번역가에게,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나름의 꿈과 기대 그리고 불확실함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안고 타지로 향하는, 태평양 어딘가에 떠 있는 불 꺼진 비행기 안에서 잠깐의 시간을 이겨 낼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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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모든 죄를 자진해서 뒤집어쓰는 자기혐오가 내 일이 안 풀리는 까닭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일 거다. 단순히 내가 못났기 때문이라고 해 두면 고민할 것도 괴로워할 것도 없다. 그대로 놓아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지금까지의 여정을 심하게 오역해 버린다. 내가 쌓아 온 것들을 까맣게 잊고 그저 나를 탓한다. 그게 쉬우니까. 나를 때리는 게 가장 만만하니까. (46p)

아무도 나를 믿어 주지 않을 때면 나라도 나를 다독이고 믿어야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나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은 마냥 나를 믿을 수가 없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위로나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실질적인 증거다. 아주 사소한 것이더라도 열심히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증거. 아주 볼품없고 하찮은 것이더라도 나를 자꾸만 못난 놈이라고 말하는 못난 나에게 이것 보라며 들이밀 증거가 필요한 거다. "기록이 보여 주리라. 내가 버텨 왔음을(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프랭크 시나트라도 <My Way>에서 불렀듯이 내게 보여 줄 기록이 필요하다.
아무리 볼품없더라도 작은 증거들을 모아 가기를. 애써 바둥거려도 나 혼자만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인 것 같을 때, 그 결정적인 자학의 순간에 그것들이 내 최후의 버팀목이 될는지도 모르니까. (47p)

"He who loves the most regrets the most. Let's not live in a fantasy."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후회하는 거야. 환상 속에 살지 말자. -직역)

"정이 깊을수록 상심이 크고 아름다운 꿈은 쉽게 깨는 법." (75p)

꿈이라는 불을 계속 지피기 위해서는 장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장작을 마련하려면 돈과 현실이 필요하다.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면 최소한의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꿈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다. 그런 현실감이 없으면 주변인들과 가족에게 걱정과 폐를 끼치게 된다. (118p)

꿈을 향해 날아가려면, 역설적이지만 반드시 현실이라는 땅에 한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부디 영웅담 같은 것들에 휘둘리지 않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쓰다 보면 자꾸 거창하게 뭐나 되는 척하게 돼서 꾹꾹 누르는 편인데 그런 메세지들을 자꾸 받다 보니 언제 한번 얘기해야겠다 싶었다.

자꾸만 지치고 숨이 막히고 현실이 생각 같지 않겠지만 그 길이 원래 그래요. 고된 길을 걸으면서도 때때로 그 하루가 보람차고 즐거워 슬쩍 웃게 되기를, 그런 날이 생각보다 많기를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121p)

서른의 불안감을 어떻게 이겨 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사실 서른의 불안감을 이겨 낸 게 아니라 그저 떠안고 살았던 것 같다. 불안이 내 속을 아무리 좀먹어도, 피가 철철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선천성 무통증 환자처럼.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진짜 안 아팠던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너무 아파서 아픈 줄도 몰랐는지도. (142p)

자식들은, 특히나 궁하게 자란 자식들은 그저 부모의 인생이 불행했을 거라고 넘겨짚는다. 하지만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대로 희로애락이 있었을 거다. 어떻게 나는 그 시절을 한번 물어볼 생각도 않고 당신의 불행을 멋대로 단정했을까. 자고로 번역가라면 원문을 제대로 확인하려는 노력은 기울였어야 했다. (168p)

엄마는 잠시 뭔가 말을 고르는 것처럼 뜸을 들이다 미안한 듯 입을 뗐다.

"너는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엄마한테서 태어나야지. 내가 너무 못해 줬어."

말문이 막혔다. 농담이 나오질 않았다. 그냥 언젠가 방송에서 들은 것 같은 뻔한 정답을 들었더라면 기분 좋게 웃고 말았을 것을. 부모들은 평생 뭐가 그리 미안한지 모르겠다.

아마 진심이 아닐 거다. 아주 극단적인 예를 제외한다면 내 자식의 부모가 아니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하는 부모는 없다. 그래서 나는 저 말을 따로 번역하지 않기로 했다. 당신의 말은 내게 너무 뻔히 읽혀서 때론 번역하는 것조차 미안할 때가 있다. 다신 그렇게 살기 싫다며 돌아가면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도 늘 그립다고 틈만 나면 아버지 얘길 하는 사람이니까. (199p)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한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다. 목숨을 내놓아야 한대도 아마 고민도 하지 않을 거다. 나는 사랑 앞에 용감하고 강한 아빠다. 그런데 사랑은 사람을 한없이 약하게 하기도 한다. 나는 행여나, 혹시나 이 행복을 잃을까 매일매일 안절부절못하는 약하디 약한 아빠다. 집에 들어와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 나면 그제야 생환이다. 전장을 누비다가 네게 살아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전혀 위험하지 않았던, 평소와 다른 것 하나 없던 퇴근길인데 혼자만 필사적으로 사지를 건너 귀환이다.

언제까지 이런 망상 같은 오역을 할지 모르겠지만 네 아빠인 이상 아무래도 이 오역을 벗어나긴 글렀다. (209p)

성공은 '오로지 운'도 아니고 '오로지 노력'도 아니다. 개화할 정도로 충분히 쌓아 온 노력이 좋은 때를 만나 결실로 구체화하는 게 성공이 아닐까. 그러니 남들이 운이 먼저라고 하든, 노력이 먼저라고 하든, 또 다른 뭔가가 먼저라고 하든 일단은 멈춰서 고민하기보다 뚜벅뚜벅 제 길을 갔으면 좋겠다. 개화할 만큼의 노력이 쌓이지 않았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매번 좌절하는 것도 그렇지만 성공은 운이라며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누워만 있는 허무주의도 우리의 앞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가 뭐라건 자기 의지로 걸어야 한다. 외부에서 유발한 동기는 가치도 효용도 없다. 내부에서 유발한 동기만이 나를 투과하지 않고 남는다. (233p)

"다정해야 해.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땐." (253p)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나는 아무래도 나이가 든 것 같다. 지금껏 그런 말들은 그저 무책임한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른들의 근거 없는 호언장담이라고 대뜸 오역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다 잘될 거야."라고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근거 없는 호언장담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경험이, 나의 나이가 그렇게 말하는 거다. 앞으로 좋은 일이 정말 많을 거라고. 가시밭길보다 꽃길이 길 거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떄떄로 소소하게, 떄론 크게 행복하고 좋은 날들을 마주하게 될 거다. 당장 취업을 한다고 평생 행복하겠나. 또 괴로운 일이 있을 것이고, 또 그 시기를 지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다. 이건 아저씨, 아주머니 소릴 듣는 사람들에겐 상식 같은 거다. 역시나 격랑을 지나는 20대엔 쉽게 환호하는 것만큼 쉽게 낙심하게 되는 걸까. 앞으로 좋은 일, 나쁜 일 들을 겪으며 그때마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것처럼 감정이 큰 진폭으로 요동치겠지만 그 진폭은 나이를 먹어 가며 조금씩 잦아든다. 그리고 결국 마음은 조금 편해진다.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굳이 굳이 아끼던 위로들을 더는 아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 말이 필요한 이들에게 해 주기로 했다.

괜찮을 거야. 다 잘될 거야.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260p)

개인적인 행복과 타인의 불행을 동시에 마주하는 순간에도, 때로는 죄책감으로 때로는 감사함으로 삶을 이어간다. 삶은 이토록 모순적이고 불가해하다. 감히 번역해 낼 수 없을 만큼. (272p)

나의 온기를 나누거나 타인의 온기를 인식하는 것은 감각의 영역 같기도 하다. 나의 온기가 필요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외부의 손길이 계산 없는 온기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도 감각이다. 감각이란 건 쓰지 않으면 오래된 피아노 건반처럼 언젠가 굳어 버린다. (2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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