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 출판
- 문학동네
- 출판일
- 2020.11.26
가장 개인적인, 가장 보편적인 기억과 기록의 주인공
‘나’라는 소우주를 탐색하는 여덟 갈래의 이야기
《노르웨이의 숲》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의 작품으로 세대와 국경을 넘어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 작가 특유의 미스터리한 세계관과 감성적인 필치, 일인칭 주인공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단편들을 모았다. 누군가의 삶을 스쳐가는 짧고 긴 만남을 그려낸 여덟 작품 속에서 유일무이의 하루키 월드를 구성하는 다채로운 요소들을 한데 만나볼 수 있다.
첫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인칭 화자의 정체성과 그 역할이다. 일정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하루키 월드 속의 ‘나’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는 한편으로 비현실적인 매개체를 통해 저도 모르는 사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그와 함께 읽는 이들을 깊은 우물과도 같은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학생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재즈와 클래식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온 작가의 라이프스타일을 익히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몇몇 작품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고, 취미생활에 대한 애정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글은 단편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게 읽힌다. 《여자 없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듯 다른 소재의 이야기를 아우르며 책을 끝맺는 표제작은 짧고도 강렬하다.
-kyobo 제공, 일인칭 단수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3.9.9 - 2023.9.12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를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을 책을 선정하는 과정은 내겐 그리 복잡하지 않다. 관심 있어하던 작가와 그럴듯한 책 제목, 그것만으로도 그 책을 읽을 만한 동기는 충분하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 책에 대해 거의 모든 것들을 모른 채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겉표지의 몇 가지 홍보성 문구,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꽤나 유명한 소설가라는 사실이 내가 아는 배경지식의 전부였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다 소설의 중반부 즈음 소설의 화자가 ‘나’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로 바뀐 순간의 당혹감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이미 절반 정도를 소설인 양 읽어왔건만. 그럼 이게 다 하루키 본인의 경험담이었다니. 물론 이 당혹감이 꽤나 기분 좋은 당혹감이었음은 분명하다.
안타까운 일인지, 혹은 자명한 일인지, 나는 하루키처럼 모호하고 오묘한 경험을 해본 일이 많지 않다. 아직은 그만한 연륜이 쌓이길 기대하기엔 어린 나이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하루키와 일맥상통하는 바는 몇 가지의 기억들을 반추하며 하루를 살아간다는 점이다. 하루키의 말처럼, 나를 추억하는 일은 어떠한 교훈이나 의의를 찾기 위함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 자체로 이미 즐겁다. 이 책 또한 무거운 주제 의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그저 나를 돌아보기 위해 가볍게 쓰인 책이 아닐까. 물론 가볍게 쓰였을지라도 쓰인 그의 기억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음은 독자들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마치 꿈같은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나와 같이 다른 독자들도 자연스레 각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을 듯하다. 내게도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비슷한 경험을 찾지는 못했더라도 하루키의 이야기들처럼 종종 내게 찾아와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다들 무슨 기억을 떠올렸는지, 그 기억에 잠시나마 행복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지금까지 살면서 설명이 안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이 지독히 흐트러지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자주라고 할 정도는 아니어도 몇 번쯤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 원에 대해-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에 대해-곰곰이 생각했다. (48-50p)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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