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찬란했던 감정의 입자들
숨이 멎는 듯한 내밀한 이야기
인생에 있어 하고 싶은 일이나 애착 같은 것 없이 그저 되는 대로 살아오던 그는 서른여덟이 되던 해 어느 날, 사랑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고 비로소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 방편으로 택한 것이 글쓰기였다. 그는 삶의 내밀한 부분들을 마치 현미경처럼 정밀히 포착해 낸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해 진한 경의와 애정을 표하고 있으며 책을 쓰는 동안 글쓰기는 이제 그에게 하나의 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보통의 존재』는 서른여덟. 무명의 작가 이석원이 마치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잡아낸 보통 사람의 내면과 일상의 풍경이 가득한 산문집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과 관련된 거대하면서도 상투적인 주제들까지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내밀하게 파고들어가 아름답고 처연한 단상들을 만들어냈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건 결국 우리 모두가 겪어온 일들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책이다. 아무리 궁금해해도 알 수 없었던 그의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책. 이석원이 아무렇지 않은 듯 술술 풀어낸 언어의 강물 위에는 말하고 싶어도 너무나 내밀해서 함부로 꺼낼 수 없거나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왔던 이야기들이 흐른다. 독자들은 그의 이야기 앞에서 큰 숨을 들이쉬며 멈칫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게 될지도.
하지만 곧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숨을 고르며 다시 그의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갈 것이다. 그 안에서 이석원은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실은 쓸쓸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위안인지도 모른다.
삶의 내밀한 부분을 현미경처럼 정밀하게 포착해 낸 이석원은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한 진한 경의와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저자가 포착한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에 있어 거대하면서도 상투적인 주제들까지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내밀하게 파고든 처연한 단상들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kyobo 제공, 보통의 존재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3.8.21 - 2023.9.12
이 글은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를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꽤나 솔직하게 쓰여진 남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었다. 일기장답게 인생사 전반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다 보니, 이 책이 어떻더라 하는 식의 요약은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그저 읽으며 내 인생 또한 종종 함께 돌아보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게 무척 즐거웠다는 정도가 이 책의 후기 전부이다.
어느 시점부터 독후감을 쓸 때 그 책의 인상적인 구절들을 그대로 옮겨서 기록해 두기 시작했다. 그 문장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고, 작가의 표현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나의 독후감에는 나만의 색이 섞여있기에, 원문이 풍기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 원문만이 가지는 고유한 무게감을 느끼고플 때가 있어서 원문을 따로 기록하곤 한다.
이 책이 특히나 그런 책이다. 나의 시각에서 나의 생각을 덧붙여 나의 언어로 표현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냥 이 책 그 자체를 각자 즐겨보길 추천한다.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든 그게 작가 이석원 그 자체일 것이고, 책을 읽으며 그라는 사람을 엿보는 일 자체가 즐거웠다는 정도만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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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는 선생님들이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잘하는 게 있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기 마련이다’ 등등의 사기를 안 쳤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랬으면 ‘왜 난 꿈이 없을까?’ 이런 고민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너는 커서 뭐가 될래?”
만약 지금 내게 누가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살다보면 생기겠죠. 끝까지 안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내 나이 서른여덟.
나는 아직도 생의 의미를 명확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전히 고민한다. 다만 분명한 건 누구나 배우가 되고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선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배우나 감독이 될 자질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 남은 생을 사는 동안, 내가 그저 관객의 안온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한들 꿈이 없다 뭐라 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이여, 꿈이 없다고 고민하지 마라.
그럼 관객이 되면 되니까.
그뿐이다. (38p)
일상적으로 즐기는 것들에 대해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그것이 왜 즐거움음 주는지 따져보는 일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고궁에 가면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책을 읽는 것은 드라마를 보는 것과는 어떻게 다르며 왜 특별할까. 또, 산책을 나가면 기분이 나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에 해답을 구하는 일들. (42p)
사람이 일평생 유년의 기억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그리움에 젖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으로만 보면 불행일 것이고,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또한 행복일 것이다. (70p)
너무 일찍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 중에 특히나 아쉬운 것으로는 정서적 퇴화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비가 어째서 이제는 단지 맑은 기분을 어지럽히는 흙탕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푸근했던 눈은 어찌하여 그저 교통을 방해하고 곧 있으면 세상을 지저분하게 만들 뿐인 번거로운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는가. 마음의 노화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꿈을 앗아가 현실 밖에는 남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78p)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만약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다면 나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몸, 내 키, 내 머리와 재능, 우리집, 내 나라, 그 어떤 것도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겁니다. 뿐입니까. 나의 성별 또한 내가 택한 것이 아니며 나의 이웃, 나의 가족, 친척, 친구 등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고른 것은 없죠. 인생이라는 게임이 왜 이렇게 모순되고 불공평한지 38년을 살아왔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뿐.
그러나 그 불공평함이 결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면, 게임의 승부는 누가 하루라도 더 빨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왜 이럴까,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저처럼 많이 한 사람들은 승부에서 꽤나 뒤처진 셈이 되겠지요.
무슨 이유로, 어떤 인연으로 우리는 누구의 자식과 손자로 태어나 그들의 생김새를, 그들의 세월과 삶이 축적된 DNA를 물려받아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걸까요. 어쩌면 내 부모라서, 형제라서 누구보다 귀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당연한 숙명과 본능의 이유를 알아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해답을 알 수 없는 오랜 물음을 던진 끝에 어느 날, 내가 그토록 달아나고 싶고 회의하던 것들로부터 나와 내 삶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인 순간, 나의 모든 아쉬움들은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잘나지 않은 내 가족과 친구들, 무엇보다 늘 부끄럽게 여기던 내 자신까지, 바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내게 건넨 힘과 그들과 함께했던 세월 덕택이었습니다. 비록 조금 뒤늦긴 했지만, 이제 내겐 이 화려한 유산을 마음껏 쓰는 일만 남았습니다. (98-99p)
어찌된 일일까. 이것이 남의 일로 충고를 해줄 때와 본인 일로 닥쳤을 때의 차이인 걸까?
분명한 것은 저런 말들을 사실은 놀랍도록 무심해지고 나약해진 요즘의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역시 조언이란 남의 상황을 빌어 자신에게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118p)
그대
활짝 핀 꽃 앞에
남은 운명이
시드는 것밖엔 없다 한들
그렇다고
피어나길 주저하겠는가. (188p)
자, 자신이 보통의 재능과 운명을 타고난 그야말로 보통의 존재라는 것도 알았고,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세월이 갈수록 나를 가려주던 백열등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도 직시하게 된 지금.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나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193p)
희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희망은 저에게도 몹시 필요하죠. 다만, 세상의 이름난 희망의 전도사들이 조금 더 세련된 방법으로 희망을 수혈해주었으면 좋겠어요.그렇게 대책 없이 세상만사가 너무나 행복하고 하루하루가 그저 기쁨이고 복되기만 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거든요. 저도 희망이 필요해서, 받고 싶어서 그래요. (254-255p)
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이 되었을 때, 상상하던 만큼의 감흥을 얻었던 적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중요한 건 이루어낸 로망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꿈을 품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268p)
행복
칠순이 넘은 부모님들이 악다구니로 싸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괴로워하고 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밤에는 손을 잡고 주무신다.
나로선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 하나로 다툼과 지긋지긋한 갈등을 미화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설명이 안 된다.
행복 중의 으뜸이 바로 평범한 행복이다.
왜냐하면 삶이, 세상이 우리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일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만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는 날, 당신의 인생은 안타깝다. (297p)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살면서 누구 때문에 신경쓰여 죽겠다, 그 인간 좀 안 봤으면 하는 생각은 많이 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행복을 느끼고 그 존재의 고마움을 되새겨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 정도만 해줘도 사람 세상이 한결 좋아질 수 있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언젠가는 한번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313p)
내가 아는 책을 많이 읽는 애들은 자신이 체험한 삶이나 상상력보다는 자기가 살아오면서 읽어온 책이나 학습의 내용에 더 크게 영향받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건 누군가의 사유와 감각의 기반이 그 자신의 체험과 삶에 중심을 두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창작물에 더 많이 기대어 있는가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이다. (334p)
사람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하나둘 포기해야 하는 것이 그만큼 늘어남을 뜻하고 결국엔 그렇게 커져가는 빈자리를 감당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어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51p)
사그라들지 않는 욕망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감당하고 받아들였다고 안도한 순간 다시 욕망이 맹렬하게 또아리를 틀 때, 나는 파고다 공원을 배회하는 불쌍한 노인이 된 듯하다. 그럴 때의 나의 글쓰기란 어쩌면 방황하는 노인의 그것과 같을지 모른다. 진정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으면 굳이 그것을 글로써 추상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3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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