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영하
- 출판
- 복복서가
- 출판일
- 2020.08.28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문체, 묵직한 주제와 위트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최고의 심리스릴러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등단 25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선보이는 ‘복복서가_김영하_소설’의 네번째 작품이자 작가의 일곱번째 장편소설인 『살인자의 기억법』은 2013년 문학동네에서 초판이 출간된 이래로 지금까지 56쇄를 중쇄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며,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2018년 일본 번역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독일 최고 추리소설 선정, 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 수상의 쾌거를 올렸다. 그리고 지난 2020년 12월, 독일 최고 권위의 추리문학상Deutscher Krimipreis을 수상하며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김영하식 스릴러의 저력을 보였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희미해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는 연쇄살인범 김병수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녹음하고, 매일의 일과를 일기로 기록한다. 소설은 이 주인공이 일지 형식으로 쓰는 짧은 글들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패러독스와 위트가 넘치는 문장들 속에 감추어진 진의를 찾아가는 독서 경험은 한 편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마저 준다. 복복서가판에서는 단절적 기억과 뚝뚝 끊어지는 서술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백을 많이 두는 편집을 하였다. 또한 작품의 심층심리적 구조와 윤리적 의미에 주목한 문학평론가 류보선의 작품론을 새로 실었고, 지난 7년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십여개국에서 출간된 후 쏟아진 리뷰들을 일부 발췌하여 함께 수록하였다.
-kyobo 제공, 살인자의 기억법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3.3.20-2023.3.22
이 글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는 글로써 기억한다. 순간순간들을 기록한다. 그 순간의 기록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그 순간 또한 선명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뒤 다시 곱씹게 되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이 책은 여러 번 곱씹어 보아도 명쾌히 풀리지 않는 찝찝함이 남는다. 내 주된 고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왜 은희와 은희를 헷갈린 것일까.
왜 박주태와 안 형사를 헷갈린 것일까.
책의 후미에 류보선 평론가의 글이 실려있다. 이 글을 읽어보면 김병수가 바라보는 은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각자의 견해, 나만의 해석을 고민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다른 이의 관점으로 한 번 바라보니 김이 식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대겠다.
고로 내게 더 흥미로웠던 고민은 후자이다. 김병수에게 박주태는 누구였는가. 김병수에게 안 형사는 누구였는가.
박주태. 사랑하는 내 딸 은희를 죽이려고 하는 우리 동네 연쇄살인범. 잠깐만. 김병수의 서술과 동일하다. 은희를 죽인 연쇄살인범은 김병수가 아니었나? 나는 박주태는 김병수의 자아 중 일부라고 생각한다. 실은 그토록 은희를 죽이고 싶었던 사람은 김병수 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병수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 '박주태'를 안 형사에 투사한 건 왜일까.
연쇄살인마의 삶에서 과거를 추억하고 철학을 사유하며 시를 쓰는 평안한 노년을 보내는 김병수. 그런 그에게 죽기 전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며 과거의 사건들을 들쑤시는 형사 한 명이 찾아온다. 언제부턴가 내 주변을 서성이기까지 한다. 지금의 고요함을 지키기 위해 김병수는 그에게 가장 익숙한 '살인' 아니 '사냥'을 택했다. 안 형사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내 인생은 셋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를 죽이기 전까지의 유년. 살인자로 살아온 청년기와 장년기. 살인 없이 살아온 평온한 삶.
은희는 내 인생 제3기를 상징하는,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부적 같은 것 아니었을까.
아침에 눈을 떠 은희를 볼 수 있다면, 나는 희생자를 찾아 헤매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75p)
내 인생의 제3기를 상징하는 은희. 이 평화를 깨뜨리려는 안 형사 곧 박주태는 은희를 위협하는 존재다. 박주태를 죽이고 평안한 삶 '은희'를 지킬 것인가, 은희를 죽이고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것인가. 두 자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과정이 곧 김병수의 알츠하이머 투병 과정이며 한 살인자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박주태를 죽여야 한다며 수업이 기록하고 녹음하며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무의식의 김병수가 죽인 건 은희였다. 그건 본능이었다.
경찰대 학생들이 떠난 뒤에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그들을 앉혀놓고 막 떠들고 싶었다.
첫번째 살인부터 마지막 살인까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사건들 모두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얘기를 듣겠지? (114p)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완벽하게 마무리했던 살인자로서의 삶. 그런 그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경찰대 학생들과 안 형사의 등장에 김병수는 몹시 들뜬다. 심지어는 경찰에 붙잡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스친다.
그런데 꿈속에서 경찰이 나를 체포하던 순간에 내가 느낀 안도감 또한 곱씹을 만하다. 그것은 오랜 여행 끝에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본 인간이 마침내 낡고 추레한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낄 법한 감정이다. (152p)
그런데 세상이 나도 용서할까? 아무 고통 없이 망각의 상태로 들어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될 연쇄살인범에게 세상은 뭐라고 할까? (165p)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직 딱 한 가지에만 능했는데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자긍심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는 것일까. (153p)
안 형사는 내 살인의 가치를 아는 인물이다. 살인이 얼마나 치밀하고 정교했는지 안 형사의 세월이 증명해 준다. 누구에게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본능이 있다. 안 형사는 무덤으로 가기 전 내 자긍심을 털어놓고 가기엔 최적의 말동무다. 그런 그를 쉽사리 죽여버릴 수는 없다. 그건 내 본능이 허락하지 않는다.
김병수는 누구보다 박주태를 죽이고픈 존재인 동시에 결코 박주태를 죽일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 글 또한 지식재산권을 가지는 지적 창작물입니다. 배포, 전송 시에는 댓글로 알려주세요.
'책으로의 여행 > 800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순(양귀자) : 양자택일 (1) | 2023.04.18 |
---|---|
작별인사(김영하)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 2023.04.11 |
백조와 박쥐(히가시노 게이고) : 반성의 정도 (1) | 2023.03.19 |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 사랑은 어디에 (0) | 2023.03.19 |
동물농장(조지 오웰) : 성공한 혁명이 되려면 (0) | 2022.07.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