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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의 여행/800 : 문학

작별인사(김영하)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평범한 과학도 2023. 4. 11.
 
작별인사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 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작별인사』의 탄생과 변신, 그리고 기원 『작별인사』는 김영하가 2019년 한 신생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으로부터 회원들에게 제공할 짧은 장편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집필한 소설이다. 회원들에게만 제공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살인자의 기억법』 발표 이후 6년이나 장편을 발표하지 못했던 작가의 무거운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작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2020년 2월, 『작별인사』가 해당 서비스의 구독 회원들에게 배송되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420매 가량이었다. 원래 작가는 『작별인사』를 조금 고친 다음, 바로 일반 독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정식 출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2020년 3월이 되자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뉴욕의 텅 빈 거리에는 시체를 실은 냉동트럭들만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었고, 파리, 런던, 밀라노의 거리에선 인적이 끊겼다. 작가들이 오랫동안 경고하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갑자기 도래한 것 같았다. 책상 앞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경장편 원고를 고쳐나가던 작가에게 몇 달 전에 쓴 원고가 문득 낯설게 느껴진 순간이 왔다. 작가는 고쳐쓰기를 반복했고, 원고는 점점 2월에 발표된 것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팬데믹은 겨울이 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고, 백신이 나와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작가는 『작별인사』의 개작을 마쳤다. 420매 분량이던 원고는 약 800매로 늘었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인가’를 묻던 소설은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팬데믹이 개작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원래 『작별인사』의 구상에 담긴 어떤 맹아가 오랜 개작을 거치며 발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제목이 어떤 마력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로 다시 쓰도록 한 것 같은 느낌이다. 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남김 없이 다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_’작가의 말’에서 전면적인 수정을 통해 2022년의 『작별인사』는 2020년의 『작별인사』를 마치 시놉시스나 초고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김영하의 이전 문학 세계와의 연결점들이 분명해졌다. 제목을 『작별인사』라고 정한 것은 거의 마지막 순간에서였다. 정하고 보니 그동안 붙여두었던 가제들보다 훨씬 잘 맞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작별인사’라는 제목을 내가 지금까지 발표한 다른 소설에 붙여 보아도 다 어울린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빛의 제국』, 심지어 『살인자의 기억법』이어도 다 그럴 듯 했을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저자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출판일
2022.05.02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지켜야 할 약속, 붙잡고 싶은 온기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 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 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kyobo 제공, 작별인사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3.3.27-2023.3.31
이 글은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금껏 그런대로 내 삶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만족'이란 충분히 행복했다는 의미이다. 조용히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할 여유가 있음에 감사했고, 음악을 들으며 숨 가쁘고 땀에 젖을 정도로 달리고 나면 그렇게 개운하고 후련할 수 없었다. 이렇듯 사소한 일상에 만족했음을 자부하는 내게 이 책이 건네는 질문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무의미한 인생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발명품이 아닐까요?

 
 
아니 그렇지 않다고, 삶의 순간순간에서 오는 행복감이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고, 그게 내 삶의 이유라며 마음속으로 조목조목 반박하며 다음 문장들을 차례로 읽어나갔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반박할 수 없는 지점을 만나고야 말았다.
 
태어나는 것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보자. 감옥 생활에 익숙해지며 종종 사소한 즐거움을 누린다면, 감옥 생활은 괴로움도 있지만 기쁨도 있다고. 그러니 감옥 생활은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어쩌면 감옥 속에서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넌 행복해야만 해! 그러니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 힘들고 지쳐도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합리화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잘 모르겠다. 전날 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자리에 든 뒤,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 하루. 날씨 좋은 날 이불 빨래를 마친 뒤 조용한 공간에서 펜을 끄적이고 있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일까? 물론 험난한 감옥 생활에서 내가 찾은 한 줄기 빛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나의 하루는 감옥 생활이라기엔 다소 거리가 있다.
 
다만 나의 하루도 항상 오늘과 같은 것은 아니다. 때때로 감옥 생활보다 더한 하루도 있다. 그런 날에 이 글을 읽었다면 무척이나 솔깃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보통 나의 욕심이 자초한 하루이다. 급하게 아침을 준비하며 얼른 집을 나간 뒤, 온종일 공부만 하다가 돌아오는 날. 해도 해도 할 일이 태산인 날. 그 태산에 치여 잠을 청하기도 어려운 날. 그런 날 밀린 일을 하며 새벽에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감옥 생활 중 사소한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나를 바쁘고 조급하게 만들며, 심지어는 삶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일까. 내 욕심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더 많은 명예를 얻고 싶은. 그 외에도 각자의 욕심이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욕심이 불행의 시작이니 욕심을 떨치라는 식의 현자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욕심도 잘 돌아보면 나의 행복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의 본성일 것이다. 그런 욕심은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 '균형'이다.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 사이의 균형 말이다.
 
욕심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 투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그 투자에 사로잡혀 행복하지 못한 오늘을 보내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욕심을 놓아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더 큰 만족을 위해 지금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면 기꺼이 참아내는 것이다. 그 사이의 균형을 스스로 고민해보고 무엇이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인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행복으로 살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더 편리하고 윤택한 삶이 행복한 삶이라며, 기술의 발전을 거듭하던 인류는 이젠 인공지능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고민의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 함께 이를 고민하며 인류의 발자취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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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상이 빨리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고,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도 인류가 이룩해온 문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18p)

"이기적인 인간은 다들 싫어하면서 왜 자기밖에 모르는 고양이한테는 사족을 못 쓰는 걸까?" (27p)

"노을 같은 무해하고 장엄한 카오스는 그냥 감상하면 그만이야. 뭐하러 예측을 하겠어? 노을이 우릴 죽이는 것도 아닌데." (33p)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69p)

"삶이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모든 감정에 절실해지니까." (86p)

"진화에 의미나 목적 따윈 없었어. 절묘한 우연들이 중첩된 것뿐이었잖아." (93p)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익숙학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112p)

"살면서 기쁜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잠깐의 기쁜 순간을 한없이 갈망하며 보냅니다. 갈망, 그것도 고통입니다." (150p)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160p)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들의 무의미한 인생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발명품이 아닐까요?"

"그 이야기라는 것 말입니다. 정말 그렇게 멋진 것일까요?" (161p)

"당신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고자 합니까?" (228p)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2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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