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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의 여행/800 : 문학

용의자 x의 헌신(히가시노 게이고) : 무조건적인 사랑, 그릇된 결과

by 평범한 과학도 2021. 7. 2.
 
용의자 X의 헌신
《동급생》, 《백야행》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2006년 제134회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일본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여지는 잔혹함이나 엽기 호러가 아닌 사랑과 '헌신'이라는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테마를 미로처럼 섬세하게 얽혀 예측하기 힘든 사건 전개와 속도감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사건은 에도가와 근처 작은 도시의 연립주택에서 한 모녀가 중년의 남자를 교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살해당한 남자의 이름은 도미가시, 살인을 저지른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
현대문학
출판일
2006.08.10

 

백 퍼센트의 사랑, 백 퍼센트의 헌신......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의 서사시

[용의자 x의 헌신]은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살인과 경찰 수사, 추리로 이어지는 미스터리 소설의 일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견인하는 것은 사랑과 헌신이라는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주제다. 도저히 상상하기도 믿기도 힘든 이 전대미문의 러브스토리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독자들로 하여금 한동안 넋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이 이렇게까지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가를 수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예스24 제공, 용의자 x의 헌신 책 소개 中-


읽은 기간: 2021.6.26-2021.6.30
이 글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수필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남편과 이혼 후 혼자 딸을 기르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도시락 가게 직원 야스코. 열심히 살아보려는 그녀의 앞에 자꾸만 나타나, 방해하는 전 남편 도미가시 신지. 그런 그를 우발적으로 살해해버린 야스코 모녀.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도와 복잡한 알리바이로 살인 사건을 무마하려는 옆집 수학 선생님 그리고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샌가 야스코와 이시가미의 편에 서게 된다. 그들의 편에 서서, 살인 사건이 들키지 않았으면 하고 마음을 졸인다. 야스코의 성실함과 노력을 알기에, 그녀의 관점에서 살인은 정당방위였다는 생각과 야스코를 향한 이시가미의 짝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을 스치며 이성의 영역이 잠시 허물어졌고, 어느샌가 나는 그들의 편이 되었다. ‘공감’과 ‘감성’을 핑계 삼아 나도 이시가미처럼 그 살인 사건에 동조한 것이다.


 감성의 늪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성의 끈을 잡아준 것은 물리학자 유가와의 등장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철저한 논리를 바탕으로 이시가미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유가와를 보며 범죄가 들킬까 떨리는 동시에, 유가와가 범죄를 해결할 거란 확신이 생겼다.


 이시가미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바꿔치기했다는 결말은 이시가미의 범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살인을 합리화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작가는 감성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결말로 모두를 납득시킨다.


 일명 ‘다크 히어로’는 정의의 편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때론 사회의 규칙을 어기기도 한다는 점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문학, 나아가 예술은 좋게 말하면 계몽, 나쁘게 말하면 선동과 모방의 성격을 띤다. 예술 작품은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야스코와 이시가미의 범죄가 완전 범죄로 끝이 났다면, 아직 올바른 선악관과 윤리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독자들은 정당방위라는 명목으로 범죄를 정당화시키는 것이 ‘옳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이 책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 이시가미 본인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분명한 잘못은 더는 이시가미를 동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는 비판적인 시각은 소설을 즐기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작지만 큰 영향, 별명 붙이기

 소설은 이시가미의 출근길에서 시작된다. 이시가미의 출근길 중 신오하시교(橋) 부근에는 노숙자 오두막이 줄지어 있다. 이시가미는 노숙자 촌에서 본 노숙자 두 명에게 ‘깡통남자’와 ‘기사’라는 별명을 붙인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시가미의 관찰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명’을 붙이지만, 별명을 붙이지 않은 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야스코이다. 이시가미에게 야스코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임을 암시하는 순간이다.


 또한, 별명은 독자가 등장인물을 쉽게 기억하도록 돕는다. 노숙자들은 소설 맨 처음에 소개된 이후, 결말이 되어서야 언급된다. 그사이에 아무런 언급이 없기에, 충분히 잊힐 만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특별한 별명을 붙였기에, 소설이 다 끝날 때쯤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별명 붙이기’는 이시가미의 성격, 야스코에 대한 이시가미의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등장인물을 쉽게 기억해서 흐름을 이어가도록 하는 일석삼조의 효과였다.


소설의 시작과 끝, 제목

 대중들에게 수학을 가장 쉽게 각인시키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수학’하면 숫자나 문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중에서도 x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했던, 마치 ‘수학의 정체성’ 같은 대표적인 미지수이다. 용의자 x라는 표현만큼 이시가미의 수학적 천재성을 잘 나타내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또한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은 모두 야스코를 향한 이시가미의 헌신뿐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 전반의 핵심 주제를 적절한 비유로 표현하고 있다. 소설 줄거리나 문장력에서뿐 아니라 제목에서도 히가시노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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